지나온 길 3 - '파랑새' 사건(1986) :: 2004/06/08 23:31

1986년 11월 8일, 아현동에 있는 <서울영상집단> 사무실에 느닷없이 10여명의 사복형사들이 들이닥쳤다. 당시 대표 홍기선을 연행하면서 시작된 ‘파랑새 사건’의 직접적인 발단은 한국의 민중항쟁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부활하는 산하, 연세대 총학생회 제작, 8미리, 1시간]라는 작품이 11월 7일 고려대학 등 대학가에서 상영되면서였다. [파랑새]가 약 20여 차례 농민들에게 상영되자 수사 기관에서는 이를 당시의 민통련 계열의 농민 선동영화로 보고 예의 주시하다가, [부활하는 산하]의 내용 중 이데올로기 서적인 [계급투쟁사]의 몇 대목이 삽입 인용된 점을 빌미로 불법 사상서적이 대중에게 전파되었다는 혐의를 잡아 연세대 총학생회에 대해 일제 검거령을 내리고, 동시에 그 제작 배후로 지목된 <서울영상집단>의 [파랑새]도 바로 그와 같은 소위 불온사상을 전파하는 작품으로 간주, 검거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대공분실의 조사에서 [부활하는 산하]와 <서울영상집단>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별다른 국가보안법 위반 및 이적 행위를 발견하지 못하자, 다시 <파랑새>를 문제삼아 영화법 32조 5항 및 12조 1항-상영 전에 공륜의 사전 심의 없이 영화를 불법으로 상영할 시 징역 2년 이하 또는 5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홍기선, 이효인을 구속하게 된다. 이것은 <서울영상집단> 및 대학 영화 권의 활동을 사회주의 이적 집단으로 몰아붙여 소형영화 활동에 일침을 가하고, 나아가서 한국 영화발전에 쐐기를 박고자 한 의도가 역력하다.

이후 <서울영상집단>은 이른 바 ‘파랑새 사건’으로 이후 영화운동 상의 입장차이와 내부문제로 조직이 분리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서울영상집단>의 해소를 주장한 이들은 충무로에 들어가 잠시 활동을 하다가 다음에서 살펴보게 될 <민족영화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나머지 회원들은 조직을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대표적인 문예운동단체인 <민중문화운동연합>의 산하로 들어가게 된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시각과 언어, 서울영상집단 엮음, 199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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