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 나를 부끄럽게 한 최초의 영화, <낙선> (감상평) :: 2004/06/07 15:36나를 부끄럽게 한 최초의 영화, <낙선>
강미란
눈물겹다.
영화는 간혹 웃음을 주기도 하고 분노를 되살리기도 하고 불끈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겹다. 나는 가슴에 저며드는 이 진한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내내 불편했다.
지난 4.13 총선은 개인적으로도 의미있는 기간이었다.
설익은 의협심 정의감 혹은 신앙심만으로 무작정 거리로 나서기만 했던 스무 살, 그이후론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발언, 나는 어느새 서른셋이 되었고 8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던 참이었다. 어느날 ‘총선시민연대’라는 글자를 신문에서 발견하자 지난 십 삼년간 묵혀두었던 가슴 속 그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다시 거리로 나갔다.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가 바꾸어야 한다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정치는 국가는 국민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여전히 최소한의 보수로 땀을 흘리며 열정 하나만으로 세상을 향해 발언하고 있었다. 그들을 비난하는 그 어떤 목소리도 내겐 설득력이 없었다. 한동안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확연한 갈라섬, 그 경계가 눈에 보였다.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과 변하지 않기를 원하는 사람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내가 어느 편인가를 묻고 답하고 움직였다.
혼자 들떠 카메라를 들고 좌충우돌하던 4월. 총선시민연대를 기록하는, 아니 2000년 4월 한국의 변혁을 기록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설렜다. 그 결과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해서 편집하는 곳에 찾아가 슬그머니 분위기를 살펴보기도 했다. 마침내 이 영화를 처음으로 공개하던 날, 나는 다리를 덜덜 떨며 숨을 죽였다.
이것이 제목인가 싶게 지나간 <낙선>이란 자막이 이 영화의 가장 적당한 제목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영화는 아쉽게 막을 내린다. 한시간 반에 이르는 긴 시간이 금세 흘렀다. 낙선운동을 전국적인 운동으로 승화시킨 숨은 주역들의 지칠 줄 모르는 행진, 어이없는 반대세력과의 숨막히는 몸싸움, 낙선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입장의 차이들, 그 차이들 딛고 단결하는 과정, 총선시민연대를 지켜보는 시민들의 기대에 찬 목소리, 마침내 개표결과가 발표되자 희비가 엇갈리는 활동가들의 표정, 표정.....
내가 눈물겨웠던 것은 당시 그 현장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언론의 화려한 보도 뒤에서 고생한 사람들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달픈 것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토록 숨죽이며 이 영화를 지켜봤던, 그래서 결국 가슴가득 찐한 감동을 느낀 진짜 이유는 아마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내가 몸담은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 당연히 말하고 지켜야 할 것을 다 포기하고 타협했던 많은 시간들이 이 땀내나는 화면과 겹치면서 너무나 부끄러웠던 게 아닐까.
<낙선>이란 영화가 ‘4.13 총선’을 얼마나 제대로 그렸으며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여주는가 묻는다면 나는 할말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에겐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을 지금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더 많은 준비와 더 많은 결합과 더 좋은 명분을 기다리며 시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쪽에 설 것인가. 이 영화는 그렇게 묻고 있다. 그리고 이미 시작해 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에 정답이 있다. 시작하라고, 당신이 이 사회에서 혹은 당신의 삶에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면 일단 시작하라고. 그것은 분명 생각했던 것 이상의 엄청난 결과를 안겨줄 것이라고, 용기를 잃지 말라고....
그리고 모든일이 정리되고 많은 사람들이 떠난 뒤, 텅 빈 채 남겨진 총선시민연대 사무실의 마지막 풍경을 통해 이 영화는 다시 한번 질문한다. 이 다음엔 어떤 모습으로 만날 것인가? 당신은 그 때 어디에 있을 것인가?
나에게 가장 아픈 부끄러움과 함께 격려를 심어준 이 영화와 이 영화를 제작하신 분들,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Trackback Address :: http://www.lookdocu.com/trackback/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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