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영상집단을 후원하는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 :: 2011/11/29 17:59

서울영상집단을 후원하는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

 

뿌연 세상입니다. 안개인지 이슬비인지 서리인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득하여 시야를 가리는 날들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 유령이라고 칭하는 것으로도 적절치 않은, 있으나 없고, 없으나 있는 것들로 숨막히는 이곳은, 무진입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루카치의 추억에 찬 탄식이 곱씹을수록 그르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별은 곧 적()이고 적은 곧 별입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목표는 곧 적에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적이 교묘히 모습을 감춘 지금, 우리가 가야할 길을 밝히는 그 분명한 적이, 별이 모습을 감춘 밤의 거리에서 우리가 보고 듣고 기록하고 말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혼란스러운 이곳은, 무진입니다.

 

<돼지의 왕>, 보셨는지요? 죄는 어디에 있는지요? 억압하는 1%에 있는지요, 억압받는 99%에 있는지요? 감히 억압에 저항하는 1/99%에 있는지요? 1/99%에 희생을 강요하며 침묵하는 98/99% 우리들에게 있는지요? 말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말을 하는 순간, 말로 인해 나누어지는 두 계층, 말에 붙는 또 다른 말들로 수없이 나누어지며 발생하는 수없이 많은 계층의 틈에서, 말은 또 다른 말을 겨냥하는 총알이 됩니다. 내 말이 하나의 총알이 되어 다른 계층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혼란이,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혼란이, 이곳 무진에 존재합니다.

 

그러함에도 말을 하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는 판단이, 혼란과 모순 속에서도 계속됩니다. 혹 누군가에게 아픔을 주더라도, 혹 누군가에게 아쉬움으로 남더라도, 혹 누군가에게 비겁한 변명의 여지를 남기더라도, 발화의 행위는 멈출 수 없습니다. 말을 하고 싶어도 차마 그 말을 뱉어낼 의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말을 하고 싶은 의지가 있음에도 발화의 방법을 미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판단의 실수가 있더라도, 발화 그 자체가 역사를 기록하는 단초들이 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20여 년이 지나, 빛 바랜 필름들이 사무실 곳곳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촌스러워지고, 투박해져 감흥이 줄어든 말들이, 당당했던 그 말들이 의기소침하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사라져 가는 것들의 신음이, 사무실 밖, 무진 곳곳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것들의 들리지 않는 소리와 동일함을 느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화 행위가 무진을 헤매는 누군가에게 길을 밝혀주지는 못할지라도, 그 길을 찾아가는 첫 발을 딛을 작은 바위가 되어줄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첫 걸음을 딛은 사람 중 하나이기에, 그 작은 경험들을 믿습니다.)

 

별이 모습을 감춘 밤 거리에 작은 촛불들이 반딧불이처럼 춤을 추는 무진의 나날입니다. 서울영상집단 또한 한 마리의 반딧불이가 되어 그 춤을 이어갈 것입니다. 20여 년을 이어온 작은 기록이, 마땅히 기록되어야 할 큰 역사의 단초가 될 것을 믿고, 약속하는 날입니다.

 

다시, 네거리에서 뵙겠습니다. 모든 잠든 것들에 아우성을!!

 

비준 무효, 명박 퇴진. 20111129일 서울영상집단 신입멤버 김청승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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