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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길 2 - 서울영상집단(1986 10. 18) :: 2004/06/08 23:30

1986년 10월 18일, <서울영상집단>(대표 홍기선, 27)은 신촌 우리마당에서 <서울영화집단> 등 그동안 민중적 시각에서 영화운동을 해온 기존 소규모 영화집단들이 발전적으로 해체, 통합되면서 창립되었다. 이들은 기존의 소규모 영화집단들이 영화운동을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인 결과물이 없었고, 소형영화운동의 한계에 직면하였던 점을 반성하고,폐쇄적인 소집단을 공개적인 대중조직으로 전환시켜 결성하게 된 것이다. 또한 <서울영화집단>이 쌓아온 기반을 보존하고, 영화운동을 필름매체에만 국한하여 사고하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단체 이름을 <서울영상집단>으로 결정하였다.

당시의 구성원으로는 서울영화집단에서 활동하던 홍기선, 이효인, 이정하, 변재란 등과 한 때 서울영화집단을 떠났던 배인정, 김대호 등이 다시 합류하였다. 이들은 새로운 영화운동조직을 건설하자는 ‘센터론’을 중심으로 제작과 교육, 배급의 중심 체계를 만들자는 목표를 세우고, 소집단 체계의 한계를 탈피하고자 제작국, 교육국, 기록국, 기획국, 편집국의 구성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아래의 <서울영상집단> 창립선언문의 일부는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전적으로 외자에 의존하고 있는 경제구조의 파생성과 독점자본과 결탁한 군부세력 및 그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정치세력 등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민중적 제 집단들에 의하여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추상적으로는 민족, 민주, 민중의 3가지 형태로, 구체적으로는 민족통일과 민주회복, 민중생활권 확보라는 명료한 목표를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현단계 문화운동은 끊임없는 민중성의 획득과 그에 따른 예술형식으로서의 민중형식에 대한 개발 및 보급에 힘써서, 이 땅에 널려있는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민중적 요소들을 척결해야 한다. 그리고 문화운동의 한 부문으로서의 영화운동 역시 같은 관점에서 즉, 민중연대 속의 끊임없는 제작 및 배급과정이 진보적 형태의 예술생산 과정이 될 것이며, 동시에 구성원들의 진보적인 활동은 민중의 정서를 획득하고 그를 통한 민중영화의 완성 및 이 땅의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80년대 이후 8미리 영화를 중심으로 한 영화운동에 대하여, 민중형식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낸 소형영화, 제반 현실에 대하여 문외한적이라고 할 만한 각종 영상자료, 그리고 고립적이며 분산적이고 배타적이었던 각 영화팀 상호간의 관계 등 이 모든 것이 우리 영화운동의 한계를 노정시켰다. 새로운 영상운동을 이 땅에서 펼치고자 모든 민주적 영상팀들이 다시금 한자리에 모였다. 모든 자기 주장을 철회하고, 이 땅의 문제 해결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서울영상집단>이라는 새로운 깃발 아래 우리는 단결한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이 깃발 아래서 과학적인 원칙론에 입각한 다양한 형태의 영상예술활동과 함께 양심적이며 진보적인 세력으로서의 강력한 역할을 이 땅에서 맡고자 하는 바이다.


<서울영상집단>은 <서울영화집단>이 해체되기 직전에 완성한 [파랑새, 8미리, 칼라, 40분]를 가지고 농촌으로 순회 상영활동을 벌였는데, 이 작품은 <카톨릭농민회> 후원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농촌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였다. 작품의 내용을 보면, 당시 농민들의 절박한 현실, 농협문제, 농가부채 문제, 의료보험 문제, 소값 파동 문제 등의 사회적 이슈를 다소 비극적으로 그렸는데, 1986년 8월 1일에서 8월 21일까지 약 20일간 충청, 호남 일원의 카농 지부 및 농촌 각 마을회관 등지에서 약 20여 차례에 걸쳐 농민들에게 상영되어 큰 호응을 얻었고, 중앙대 고려대 등에서 학생들에게 상영되었던 비영리적 영화였다.

<파랑새>는 기획부터 제작, 상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농민운동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졌고, 농민운동 조직과 결합하여 제작된 작품으로 영화운동사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 죄인]이라는 농민 이야기책을 기초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농민들과 토론 분석하여 제작되었고, 작품이 완성된 후에는 다시 농민에게 시사하여 토론회를 조직하는 등 영화 매체를 진정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하였다는 데 커다란 의의가 있는 것이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시각과 언어, 서울영상집단 엮음, 199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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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길 1 - 서울영화집단 (1982- 1986 초) :: 2004/06/08 23:21

1982년 3월,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주목하면서 사회로 진출한 최초의 영화단체가 바로 <서울영화집단>이다. 이들은 서울대 <얄라셩 영화연구회> 출신을 주축으로 12명의 20대 영화인으로 구성되었는데, 1982년 봄 첫 작품 [판놀이 아리랑] 발표를 계기로 결성되었다. 새로운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출발한 <서울영화집단>은 초기에는 대학을 중심으로 비상업영화에 대해 연구하고, 개인 제작과 공동 제작을 병행하여 적지않은 수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이 때의 작품으로는 [판놀이 아리랑, 8미리, 18분], [전야제, 8미리, 30분], [출가, 8미리, 15분], [결투, 8미리, 5분], [장님의 거리, 8/16미리, 18분](‘82년도), [생활, 8미리, 16분](’83년도)이 있다. 초기의 개인적인 열정으로 출발한 이들은 점차 영화의 시대적인 역할에 대해 눈을 뜨고 구체적인 연구작업을 시작하는데, 그 과정의 일환으로 1983년 <새로운 영화를 위하여>(1983,학민사)라는 책을 출판하게 된다.

당시의 회원으로는 박광수, 문원립, 홍기선, 송능한, 황규덕, 윤영주, 오만호, 배인정, 김대호, 김인수, 김의석, 김홍준, 김동빈, 이홍철, 박은미 등이 있었으며, 각 대학 4년생들과 대학원생, 졸업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서울영화집단>은 그들의 영화관을 피력하고 있는데,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영화운동의 경험을 소개하는 대목과 ‘민중영화’라는 용어가 주목할만한다. 먼저 책에 나타난 ‘민중영화’에 대한 이들의 견해를 살펴보자.
민중영화’란 민중 주체의 예술운동으로서, 민중은 누구이며 민중은 무엇인가 그리고 삶의 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삶을 압살하는 자들의 편에 서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민중의 분열, 대립, 적대감, 환락, 부패를 책동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기회복을 위한 저항, 각성, 통일, 신명을 촉성하는 영화를 말한다. 또한 민중영화란 우리의 영화 현실의 모순과 비리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나온 개념인 동시에 이 땅에서 진행되는 다른 예술매체의 운동적 성과를 반영한 말이기도 하다.


또한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영화가 해야할 역할은 건강한 사회, 건강한 생활의 회복과 창조를 돕는 것으로 보고, 이는 곧 바람직한 민족공동체, 지역공동체, 일 공동체, 가족공동체의 발전적인 회복과 창조라고 본다. 따라서 바람직한 각 공동체의 회복과 창조를 위해 공동체적인 매체인 영화가 주력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론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실천해야 할 영화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제기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는 영화의 자율성을 최대한 획득하기 위해, 값싸고 간편한 8mm, 16mm 기재를 이용한 제작방법과 새로운 배급창구를 끊임없이 개척하는 소집단 영화운동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영화의 민중성과 공동체성을 획득하고자 끊임없이 실천해온 제 3세계 영화운동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들의 활동이 한국의 영화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특히 영화운동의 방향과 관련한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영화운동의 과제는 우리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허황된 논리와 관념적인 예술관에서 탈피하는 것이며, 영화소집단운동의 구체적인 실천 활동으로 우리의 지식인적인 자세, 예술가적인 자세-관념성, 관망성, 낭만성-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영화소집단운동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우리 사회 현실을 민중 스스로 깨닫고 민중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데 이바지하는 교육의 기능이라고 보고, 제작도 민중의 의지, 공동체의 의지가 표출되는 공동작업의 방법론을 지향해야 하고, 배급이나 시사(試寫) 체계에서도 최대한의 공감대 의식을 형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한편, 책의 구성을 보면 <서울영화집단> 성원들이 주로 60,70년대 라틴아메리카 영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책의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주로 남미에서 정초된 ‘해방영화론’,‘제 3영화론’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80년대 초만해도 한국을 일종의 종속상태로 규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만큼, 식민지 민족해방을 주요 과제로 삼았던 남미의 영화적 경험에 주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특히 페르난도 솔라나스와 옥타비아 게키노가 공동집필한 [제 3영화를 위하여]와 게티노의 [오늘날의 3영화]라는 글들이 자주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글들과 <서울영화집단> 회원들의 글을 비교해보면 다큐멘타리적 창작방법을 옹호하고 강한 민중지향성을 지닌 관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볼리비아의 <우카마우 집단>이 사건 현장에서 사건의 당사자들과 공동제작의 형태를 취하는 사례를 모범으로 보았는데, <서울영화집단>이라는 이름도 <우카마우 집단>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니, 당시 남미영화에 대한 그들의 관심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같은 이들의 견해는 ‘무조건적 수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이러한 비판이 영화운동의 초창기에 지표를 제시한 긍정적인 가치를 퇴색시킬 수는 없었다.

이후 <서울영화집단>은 이 책에 이어 <영화운동론>(1985, 화다)을 출간하여, 이후 한국의 영화운동에 새로운 작업의 지평을 열고 활동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의 작품으로는 [수리세, 8미리, 35분](84.02), [그 여름, 8미리, 35분](84.07) 등이 있는데, [수리세]는 전남 구례에서 있었던 농민들의 수세 현물납부 투쟁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작진은 투쟁 현장으로 가서 그 곳 농민들의 인터뷰와 사건의 재현 등을 통해 다큐멘타리로 재구성하여 제작하였다. 작품의 완성도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 작품은 <서울영화집단>이 표방한 소형영화운동의 방법론을 구체화 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의의를 갖고 있다. [그 여름]은 노동자를 비롯한 소외계층의 인물들이 모순된 한국사회 속에서 좌절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드라마 형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80년대 독립영화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되고 있는 <서울영화집단>은 대학가의 영화연구모임, 영화감상모임에서 발전하여 이후 많은 대학영화집단이 등장하는 직접적 토대가 되었으며, 한국의 영화 문화에 민족 민중적 미학의 씨앗을 뿌리는 큰 역할을 하였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시각과 언어, 서울영상집단 엮음, 199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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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영상집단 소개 팜플렛 :: 2004/06/0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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