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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다큐 <자전거, 도시> 공개합니다. :: 2021/10/26 17:54

공미연 감독의 2015년작 장편다큐 <자전거, 도시> 공개합니다.


자전거와 도시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시는 분들, 찾고자 하시는 분들 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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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감독의 <본명선언> 문제제기에 대한 현 서울영상집단의 입장(사과문)입니다. :: 2020/01/19 22:50

안녕하세요, 서울영상집단 공미연입니다.


우리 모두 잊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가해자였습니다. 가해의 기억은 집단무의식 속에 편의적으로 왜곡되고 쉽게 잊혀집니다. 반면 피해의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홀로 날이 서갑니다. 저는 "왜 이제 와서 문제 제기하냐"는 몇몇 독립영화인들의 음모론적 역 문제 제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부끄러운 기억들을 되짚어 다시 밝히고, 한 창작자의 삶에 여전히 남아있는 상처 앞에 겸허히 사죄드리고자 합니다.


0. 


서울영상집단의 전신은 1980년에 결성된 서울영화집단이며, 1986년 집단명 개명, 1990년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활동 범위를 한정하는 등, 시간이 흐르며 구성원이 달라져왔으며 그 구성원의 성격에 따라 집단의 성격 또한 변해왔습니다. <본명선언>이 제작된 1998년과 현재의 공통된 구성원은 저 공미연 한 사람 뿐입니다.


1. 


홍형숙 감독이 연출한 <본명선언>은 저희 서울영상집단이 1998년에 제작한 장편다큐멘터리입니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교포(재일조선인 및 재일한국인)들은 사회적 편견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명을 숨기고 일본식 이름으로 생활했습니다. <본명선언>은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시립 아마가사키 고등학교 재일교포 학생들의 본명선언(커밍아웃)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재일교포인 양영희 감독이 제작한 방송다큐 <흔들리는 마음>의 영상이 포함돼 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은 동일하게 아마가사키 고등학교 학생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며 <본명선언>에 앞서 1996년 NHK에서 제작되고 방영되었습니다. 


러닝타임 약 67분의 <본명선언>과 러닝타임 약 30분의 <흔들리는 마음>은 세 씬(scene) 총 7분 50초의 영상이 동일합니다. 그 외 양영희감독이 촬영한 테잎 중 추가로 1분 50초를 사용하여 편집에 더했습니다. 양영희감독의 영상을 <본명선언>에 사용한 분량은 총 9분 40초입니다.


2. 


<본명선언> 제작 당시 저 공미연은 후반작업에 참여했으며 <본명선언> 엔딩크레딧에는 연출부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가편집에 참여하면서 <흔들리는 마음> 등 양영희감독의 촬영본이 <본명선언>에 사용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울영상집단 멤버들은 양영희감독이 제공한 모든 영상의 사용을 동의받은 것으로 이해했었습니다. 이는 홍형숙감독의 말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본명선언>은 1998년 부산영화제에서 첫 상영되었으며, 해당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최우수상에 해당하는 와이드앵글 부문 운파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중앙일보 기사 등에 의해 <흔들리는 마음>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었으며, 저희 서울영상집단 멤버들은 중앙일보 등의 언론매체에 대응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당시 저희가 배포한 보도자료 등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홍형숙감독이 타 멤버들에게 주장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양영희씨가) 촬영 원본을 보냈다는 것은 그것들 중 일부를 그대로 사용해도 좋다는 뜻임은 상식에 속하는 판단입니다."


부산영화제 상영 전, 홍형숙감독은 영화잡지 키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영상 사용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전체 촬영 분량에서 쓴 분량은 얼마 정도입니까?) 60분짜리 테이프 40개가 나왔다. 그리고 흑백 장면은 영희라는 친구한테 받은 자료 필름이다. 그 장면이 6분 정도 되는데, 사실 그 친구가 찍은 분량은 어마어마했다. 거의 80개 정도. 그걸 추려서 만든 거다. (영희 씨가 찍었다는 95년 총회에 관련된 장면은 본래 흑백이었습니까?) 칼라를 흑백으로 전환시켰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 가지는 이건 우리가 찍은 게 아니고 자료화면(일반적인 자료화면의 뜻은 아니지만)이며 영희가 찍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8미리는 원래 보존상태가 안 좋은데다가 화질 차이도 심각했다. 노이즈도 많이 생기고. 이 친구는 또 초보라서 화면 구도 같은 데 익숙하지가 않았고, 그래서 그것을 보정해주어야 했다. 그리고 과거시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해주고 싶었다. 과거시점을 흑백으로 처리하는 것은 극영화에서 익숙한 방법입니다. 칼라를 흑백으로 바꾸었다면 거기에 개입되는 미학적 원칙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일 중요한 건 아까 말했던 첫번째 이유 때문이었다. 이 영화의 구성은 3일 동안의 일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과거가 들어간다. 그렇다면 주인공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과거와 현재에 벌어지는 모양새가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너무 반복적이고 지루하게 보여질 수도 있다. 칼라영화에서 거꾸로 흑백은 인상이 매우 강렬하다. 칼라에 워낙 길들여져 있어서. 그렇다면 이 부분에서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과거에 이 아이들의 선배들은 이랬습니다 라는 것을 좀더 확실히 보여주고 싶었다."


위 인터뷰에도, <본명선언> 흑백장면과 엔딩크레딧에도 <흔들리는 마음>이라는 창작물은 명시되지 않았으며, 엔딩크레딧에는 "8mm 취재 양영희"로만 표시되었습니다. 위 인터뷰에서처럼 홍형숙 감독은 <흔들리는 마음>이라는 창작물을 먼저 만들었던 양영희감독을 '초보자'로 치부할 뿐이었습니다. (양영희감독의 씨네21 기고글에서 언급된 <경계도시2> 논란에서도 홍형숙감독은 동일하게 김명화PD를 초보자로 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홍형숙감독의 일방적인 태도와 주장만 존재할 뿐, 양영희감독과의 합의내용에 대한 어떤 객관적 증거가 없었음에도, 당시 저희는 홍형숙감독의 주장에 기대어 이 논란에 대응했으며 양영희감독의 말에 귀기울이려는 노력을 하지 못했습니다.


3.


부산국제영화제 수상 이후, 저는 서울영상집단에 걸려온 양영희감독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를 만난 적이 없었던 저는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으나, 그의 격앙된 태도에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홍형숙감독의 부재를 전하는 저에게 그는 "양영희가 매우 화가 나있다고 전해달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후 저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일종의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으나, 홍형숙감독과 여타 멤버들에게 이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당사자간에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본명선언>을 공개하기 전 홍형숙감독이 양영희감독에게 편집본을 전달하지 않은 것이 저는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용허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원본을 건내 준 사람이 편집본 확인 후 이의 및 문제를 제기 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시 논의를 진행하고 편집을 마무리 하는 것이 상식이니까요. 상영과 수상 이후 양영희 감독의 단호한 문제제기에 촬영 원본 및 <흔들리는 마음> 사용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지도 의문이 들어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저를 포함한 활동경력이 짧았던 당시 서울영상집단 맴버 대부분에게 이 논의에 참여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표절시비가 불궈졌으며, 합숙과정을 가지며 언론대응에 급급한 사무실 분위기에 저희 모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채 이 한국 영화계의 논란은 홍형숙감독의 일방적인 주장 하에 흐지부지 잊혀져갔습니다. 


이후 서울영상집단 멤버들은 구성원 간의 합의에 따라 "본명선언" 상영(공개)을 중지했으며, 이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결정이 결국 "양영희감독이 명예를 회복하고 시비를 가릴 증거를 은닉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누군가의 문제 제기에 저는 일면 동의하며 당시 결정을 어떻게 재논의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4. 


22년이 지나 양영희감독이 스스로 다시 문제 제기를 하고서야, 저는 양영희감독을 처음 만났습니다. (1998년 첫 문제 제기 당시 한국 국적이 없었던 양영희감독은 국적 취득 후 현재는 자유롭게 한국을 오가고 있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서야, <본명선언> 제작과정에서 양영희감독과 홍형숙 감독 간에 어떤 말이 오고갔으며 무엇이 논의되었고 무엇이 동의되지 못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양영희감독으로부터 듣게 된, 홍형숙감독으로부터 듣지 못했던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양영희감독은 영상 사용에 관해 동의한 적이 없으며, 원본 촬영테잎을 보낸 것 또한 사용을 전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95년 관객으로서 야마가타 영화제를 찾은 양영희 감독은, 영화 상영을 위해 영화제를 찾은 한국의 기성감독 홍형숙을 처음 만났습니다. 양영희감독은 술자리를 같이 한 한국에서 온 감독들에게 자신의 가족사와 재일교포 문제, 특히 본명과 통명(일본식 이름) 사이에서 가지는 고민에 대해서 설명했고, 홍형숙감독이 재일교포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현재 일본 고등학교에 다니는 재일교포 학생들의 이름에 관한 고민을 취재 중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영화제 이후에도 양영희감독은 홍형숙감독으로부터 종종 연락을 받았으며, 1996년에 <흔들리는 마음>이 완성되어 NHK에 방영된 소식을 알리자 홍형숙감독은 이에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양영희감독은 한국 영화감독이 재일교포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반가운 마음을 가졌으며, 홍형숙감독이 재일교포 문제를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흔들리는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97년 양영희감독은 뉴욕 유학 준비 중이었으며, 이때 홍형숙감독이 촬영감독과 함께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홍형숙감독으로부터 재일교포에 대한 영화를 제작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받은 양영희감독은 여러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흔들리는 마음"에 등장한 아마가사키 고등학교의 선생님을 소개시켜주었습니다. 홍형숙감독은 첫만남에서부터 선생님을 촬영하기 시작했으며, 통역을 자처했던 양영희감독은 이에 매우 당황했으나 자료수집 과정으로 이해하려 노력했다고합니다. 이때 양영희감독은 홍형숙감독으로부터 <흔들리는 마음> 촬영 테잎들을 제공해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유학 준비로 바쁘던 양영희감독은 이 당황스런 요구를 최대한 좋게 해석하려고 노력했으며, 제공하는 테잎 또한 홍형숙감독이 재일교포 문제를 알아가는 과정에 단순히 자료로만 활용될 거라고 여겼습니다. 혹 이 테잎 중 아주 사소한 장면이라도 이후 홍형숙감독의 영화에 사용될 경우에는 홍형숙감독으로부터 별도의 연락이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는 홍형숙감독이 경험 많은 기성감독이었기에 가지게 된 신뢰에 바탕했습니다. 


그러나, 1998년 <본명선언>이 완성되고 부산영화제에서 수상할 때까지 양영희감독은 홍형숙감독으로부터 이에 관련된 정확한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양영희감독은 홍형숙감독이 재일교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라고만 알았을 뿐이었으며, <본명선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 자신이 촬영한 테잎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뉴욕에 있던 양영희 감독은 지인이 아사히신문에 실린 <본명선언>의 수상 소식을 알려온 후에야 홍형숙감독의 영화가 완성된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제서야 홍형숙감독에게 연락해 <본명선언> 최종본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직접 확인한 <본명선언>과 문제 제기 이후 홍형숙감독 및 서울영상집단이 보인 반응에 양영희 감독은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으며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이상이 제가 양영희감독을 만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짧게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양영희 감독을 만나고서야, 양영희 감독의 촬영원본이 <본명선언>에 사용되게 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5. 


'원본을 줬기때문에 사용에 대해 합의가 있었다'는 홍형숙감독과 당시 서울영상집단이 주장한 상식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진실은 1998년에 이미 존재했으나, 부산영화제 수상작이라는 한국독립영화의 권위 앞에서 우리 모두는 진실을 거부했습니다. 22년이 지나 다시금 제기된 문제, 다시금 발화된 진실 앞에 저희는 떳떳하지 못합니다. 한국독립영화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양영희감독의 진실이 아니라, 그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한국독립영화인들의 태도 자체일 겁니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스트들은 종종 방송사에 대한 분노를 공유하곤 합니다. 우리가 현장에서 애써 찍은 영상은 무상으로 함부로 가져다 쓰면서, 반대로 우리가 방송사의 영상 사용을 요구할 때는 초단위로 돈을 매긴다고, 방송상의 모순적인 태도에 화를 내곤 합니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스트들은 상호 간의 친분에 근거해 서로가 촬영한 영상을 주고 받기도 합니다. 상호 합의에 바탕한 이 경험들은 어떤 식으로든 늘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되짚어보면 영상을 제공하고 제공받음에는 경력의 위계가 늘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품앗이로만 여기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이제야 인지합니다. 더욱이 상호 간에 합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내 입장에서 합의가 되었다고 여기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결국 그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합의된 인용이 아니라, 도용이었다고 결론 지어도 무관할 것입니다. 저희의 잘못이었습니다.


양영희감독은 이 사건의 진짜 피해자는 자신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라고 말을 했습니다. 영화를 도구로 삼아 만들어지는 권위와 명예와 위계 앞에서 우리는 종종 각자가 영화를 만들어온 처음의 소신과 원칙을 잃곤 합니다. 저희 서울영상집단의 미숙한 문제 해결은 결국, 하루 하루 일본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며 용기 내 저희 카메라 앞에 서주었던 학생들의 노력을 무용한 것으로 박제해버렸으며, 이 영화에 관심 가져준 재일교포들과 관객들에게 상처를 남기고 말았습니다.


<본명선언>에 대한 양영희감독의 문제 제기 및 <경계도시2(감어인필름 제작)>에 대한 김명화PD의 문제 제기를 통해, 현 서울영상집단 멤버들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저희의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고 그동안 맺어왔던 관계들에 대해 되짚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가고자 합니다. 위 두 문제 제기를 비롯해 저희 독립영화인들은 지난 시간 수많은 반성의 기회를 놓쳐 왔습니다. 외부로부터 제기된 문제 제기는 늘 당황스럽습니다. 이 당황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더 이상은 문제 제기를 막는 근거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상처에 맞서는 용기있는 문제 제기들이 저희 독립영화인들에게 유의미한 반성과 토론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5. 


마지막으로 아래의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창작자로서,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지난 시간 저희의 미숙한 언행으로 인해, 또 한 명의 창작자이며 다큐멘터리스트인 양영희씨에게 오랜 시간 상처를 드린 것에 대해 사과 드립니다.


<흔들리는 마음>과 <본명선언> 출연진들의 진심에 상처 남긴 것에 대해 사과 드리며, 재일교포분들 및 재일교포들의 인권에 관심 가지고 활동하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사과 드립니다.


다큐멘터리를 사랑하고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분들에게 사과드리며,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 중인 동료 독립영화인들 및 다큐멘터리 창작자분들에게도 사과 드립니다.



- 2020년  1월 19일, 서울영상집단 공미연



* 씨네21에 게재된 양영희감독의 기고문의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94675#_enli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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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시> 31번째 상영 :: 2019/05/23 22:41

공미연 감독의 장편다큐 <자전거, 도시> 31번째 상영소식 전합니다.


마포녹색당의 주최로, 5월 25일(토) 오후 3시, "우리동네 나무그늘"에서 상영합니다.

(서울 마포구 백범로 113-1, 2층)


상영회 참가 신청은 여기로~~
https://forms.gle/DHMEE2XC7tAWUaT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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